본격적인 더위가 닥치기 전의 여름날.
놀이터 한구석에서 자그마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울음소리의 근원지는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으슥한 곳에 놓인 다 허물어져가는 골판지.
이미 반쯤은 시꺼멓게 썩어버려 골판지가 아니라 썩은 무언가같지만, 그 안에는 네마리의 실장석들이 있었다. 정확히는 자실장 셋에 엄지실장 하나였지만.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마마가 돌아오지 않는 테츄....."
"배고픈테치이......."
"레에에... 오네챠 울지마레치"
자실장과 엄지실장들은 이미 오랜시간 굶은 것인지 피골이 상접해있다.
며칠 동안은 친실장이 숨겨놓은 쉰밥덩이로 끼니를 떼워왔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모두 떨어져버렸다. 그후 나름대로 궁리를 해서 밥을 구해보려고했지만, 이들은 아직 태어난지 채 두달도 되지 않은 어린 자실장. 친실장에게서 바깥세상은 아주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것만 배운 그녀들이 구할 수 있는 것은 골판지 주변에 돋아있는 잡초 몇뿌리가 전부였다.
질기고 쓴맛이 나서 평소에는 도저히 먹지 못하던 잡초였지만, 이틀을 내리굶게되자 장녀를 필두로 조금씩 입에 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영양가라고는 한푼 값어치도 없는 잡초로는 도저히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 특히 한창 자라나는 자실장이기에 그 공허함은 훨씬 크게 다가온다. 아직 어린 자실장이 한끼를 굶는 것은 성체실장이 세끼를 굶는 것과 맞먹는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마마가 오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외로움에 매일매일 눈물로 지세우던 자실장들이었지만, 이젠 진지하게 본인들의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네챠... 마마를 찾으러가는테치..."
"장녀오네챠.... 배고파테치.. 풀은 이제 지겨운테츄..."
둘째와 셋째는 가만히 누워있는 장녀를 재촉한다.
실장석이 낳는 첫번째 아이는 다른 어떤 자매들보다도 더 똑똑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장녀라고 불린 자실장은 아까전부터 가만히 그늘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칭얼거리는 자매들과는 달리 체력을 온존히 보존하기 위한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장녀도 동생들의 계속된 요구에 더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말한테치! 왜 우리들이 이런 독라가 됐는지 기억못하는테챠?!"
"테........"
장녀의 신경질적인 고함에 방금까지도 입놀리기에 바빴던 둘째와 셋째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곧 새파랗게 질린다.
"밖에는 무섭고 무서운 닌겐들이 있는테치! 그것도 아주아주 많은테치! 절대 나가면 안되는테치!"
"하지만, 이대로는 죽어버리는테치!!"
"기다리는테치! 마마를 기다리는테치!!"
"하지만... 마마는... 마마는...."
장녀의 말에 튀어오르듯이 반항하던 차녀도 마마라는 이야기에 금새 수그러들고만다.
그리고 이내 자매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남는다.
차녀는 무어라고 말을 하려는듯 몇번이나 멈칫멈칫거렸지만 결국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주저앉는다.
그걸 보는 장녀도. 삼녀도. 아직 어린 막내 엄지쨩도 얼굴이 돌처럼 굳어있다.
'마마는 죽은테치....'
장녀는 마음속으로 차녀가 못다한 말을 끝맺는다.
벌써 나흘째.
날짜라는 개념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안다.
늘 하늘이 푸르스름할때 집밖에 나가서 다시 하늘이 빨갛게 물들기 전에 돌아왔던 마마였다.
조금 늦게 돌아올때도 있었지만, 햇님이 완전히 사라져서 하늘이 까맣게 되기 전에는 돌아왔다.
그런 마마가.
그런 마마가 벌써 파랗고, 빨갛고, 까맣고.
다시 파래지고, 빨개지고, 까매지고.
또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장녀는. 아니 자매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는테치. 조금 있다 어두워지면... 와타치가 나가보는테치."
장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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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챠 괜찮은테치? 정말 위험하지 않은테치?"
"장녀 오네챠.... 위험한레치... 가지말았으면하는레치.."
"오네챠... 그럼 와타치도 따라가는테치."
놀이터에도 어둠이 내리고, 골판지 하우스에서는 분주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안되는테치. 차녀쨩은 동생들을 돌보고있는테치. 와타치 혼자가는테치."
"테에... 하지만..."
"괜찮은테치. 와타치는 달리기가 빠른테치. 바로 도망가면 되는테치. 혼자라면 도망치기 더 쉬운테치."
장녀는 걱정하는 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짐짓 배를 불룩 내밀어보인다.
굳은 얼굴에는 한껏 미소를 지어보지만 어딘지 불편해보인다.
동생들도 그런 장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막내인 엄지는 장녀를 또다른 친실장처럼 따랐기에 벌써 얼굴에 눈물자국이 가득하다.
"걱정마는테치. 와타치가 가서 마마와 밥먹이를 많이 구해오는테치. 너희들은 집을 잘 보고있는테치."
말을 마친 장녀는 혹시 동생들이 따라올까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장녀의 생각대로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마를 찾기에는 밝은 대낮이 더 편하겠지만, 그러면 자신도 훨씬 더 들키기 쉽다.
차라리 컴컴한 밤에 나가는 것이 덜 위험하겠다는 판단이었는데, 그 생각이 보기좋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장녀는 놀이터를 단숨에 주파하고 주택가의 골목길로 접어든다.
'마마는 항상 이쪽으로 갔던테치.'
장녀는 기억을 더듬어 친실장이 향했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동물이라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그야말로 전무한 실장석이라 냄새로 친실장을 추적하거나 하는 행동따위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서라고는 친실장이 곧잘 이쪽 방향으로 갔다는 근거없는 추측뿐. 사실 그마저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중얼거리며 장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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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뒤...
장녀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가로등에 기대 주저앉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친실장은 찾지 못했다.
밥먹이도 구할 수 없었고, 누가 버린 빈 캔커피를 기울여 쌉쌀한 검은 물을 조금 마신 것이 전부였다.
마마는 찾지 못했고, 밥도 못 구했고,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잃어버렸다.
너무도 큰 절망에 장녀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푹 고개를 떨군다.
그때
"너 여기서 뭐해?"
"테, 테챠?!"
황급히 고개를 든 장녀의 앞에는 왠 남자가 하나 서있다.
"테챠아아아!!!"
뿌직뿌직뿌직뿌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녹색반죽이 장녀의 엉덩이에서 질질 흘러나온다.
도망이라도 치려는듯 손발을 허우적거리지만 이미 힘이 풀린지 오래다.
간신히 네발로 떨리는 몸을 지탱하고 벌벌 기어보지만 도망갈 수 있을리가 없다.
"안심해. 괴롭히지 않아."
남자는 똥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상냥한 말투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장녀는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자가 앞을 가로막으면 다시 뿌직뿌직뿌직 똥을 싸고 허우적거리며 반대로 기어간다.
그런 장녀를 껑충 뛰어넘어 남자가 다시 앞을 막으면 또 비명을 지르며 같은 짓을 반복한다.
이런 일이 몇번이나 반복되고, 더이상 장녀의 엉덩이에서 흘러나오는 녹색똥도 거의 없을 무렵에야 장녀는 겨우 정신을 차린다.
"테에... 테에테에테에... 테에..."
"이제 좀 진정됐어?"
"테에에에... 테에.. 테...."
"넌 사람을 아주 무서워하는구나~ 하긴 그 상태를 보면 왜 그런지도 알겠지만."
"테... 테츄?"
남자는 아직 벌벌 떨고 있는 장녀에게 무언가를 내민다.
노란 콘페이토다.
남자는 움찔하는 장녀를 안심하라는듯 어루만지고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긴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콘페이토 하나를 집어 우적우적 씹어 꿀꺽 삼킨다.
"자, 봤지? 이건 독같은게 아냐. 너도 하나 먹어."
"테.......?"
"콘페이토는 처음이니? 아주 달고 맛있단다."
장녀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어 콘페이토를 받았다.
처음 보는 물건.
하지만 아주 달콤한 향기. 평소엔 거의 맡아보지도 못했던 먹음직한 냄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냄새가 있었다니...
하긴 음식이라곤 다 썩어버린 밥찌꺼기와 하수구에서 건져낸 양파껍데기 정도나 씹고, 그것조차 없을때는 잡초나 캐먹던 장녀에게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향기에 취해서일까. 장녀는 자신도 모르게 콘페이토를 입에 넣는다.
"테테테테테테테테 텟츄우우우우우~~~~운~~~♡♥"
장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뿌직뿌직뿌직 탈분한다.
녹색똥을 깔아뭉개고 앉은 채였지만, 입안의 달콤함을 견딜 수 없다는듯 눈을 가늘게 뜨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혹시 입에서 빠져나갈까 싶어 두손으로 입을 꼭 막는다.
"텟츈! 텟츈! 텟츈!"
장녀는 연신 몸을 비꼬면서 탄성을 연발한다.
평생 처음 맛보는 단맛.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달콤한 감각.
특히나 태생적으로 단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실장석이기에 이 기쁨은 더하다.
가난한 들실장이기 이전에 실장석이란 생물 자체에 새겨진 감각이 눈을 뜬 것이다.
"어때? 마음에 드니?"
남자는 그런 장녀를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미소짓는다.
"맛있는테치! 닌겐상 고마워요테치!"
아까까지만해도 괴물보듯 발악하던 장녀였지만, 콘페이토 하나에 순식간에 닌겐상으로 격상된 남자였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래도 좋은듯 장녀의 엉덩이와 다리에 묻은 똥을 상냥하게 티슈로 닦아준다.
제법 깨끗해지자 똥투성이인 그곳을 벗어나서 근처의 벤치로 장녀를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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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마마를 찾으러 왔구나..."
"테..... 하지만 마마 못찾은테치...."
"동생들도 있다고했지?"
"테에... 그런테치... 동생쨩들도 오래오래 굶은테치... 와타치 빨리 동생들한테 가고싶은테츄..."
"음... 내가 너희 마마를 찾아줄 수도 있는데..."
"테, 테뱌아?! 저, 저, 저, 저, 정말인테치? 닌겐상 그게 정말인테치?"
방금까지만 해도 눈물을 글썽이던 장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장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마를 다시 찾을 수 있다니.
사실 마마를 다시 보는 것은 오래 전에 마음 속으로 체념한 장녀였지만,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니 다시 가슴이 뛸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장석에게 있어 인간이란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에게 기적을 갈구하듯이, 실장석도 인간에게 기적을 갈구한다. 죽어버린. 아니 죽었을 것 같은 친실장이지만, 이렇게 닌겐상이 나서준다면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방금전까지 풀이 죽어있던 장녀는 언제그랬느냐는듯 힘차게 되물었다.
"닌겐상 정말인테치? 정말 마마를 찾아줄 수 있는테치? 마마를 찾는테치? 닌겐상?"
"그럼그럼. 단........ 네가 시험을 통과하면이겠지만."
"시.....험테치?"
"아~ 아~ 그렇게 심각한 얼굴 할 필요없어. 금방 끝나니깐. 어때? 해볼래?"
"하, 하는테치! 무슨 일이든 하는테치!! 마마를 위해서라면 팔 하나도. 다리 한쪽도 내걸 수 있는테치! 와타치 무엇이든 하는테치!!"
"하하 기운차서 좋은걸. 좋아. 그럼 말 나온김에 바로 갈까?"
"네 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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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장녀를 비닐봉투에 넣고 도착한 곳은 주택가를 빠져나와서 조금 더 걸어가면 있는 낡은 창고였다.
"늦었잖아! 벌써 5분전이라고! 구했어?!"
"그렇게 잡아먹을것처럼 굴지말라고. 여기 구해왔다니깐."
남자는 봉투를 열어 장녀를 꺼내 보여준다.
그러나 창고에서 나온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있다.
"이게뭐야? 자실장이잖아? 그것도 이렇게나 어린..."
"아니 그럼 이런 밤중에 어딜가서 구해와? 실장샵도 다 문닫았고, 얼마전에 구제때문에 길에 실장석이라곤 씨가 말랐는데!"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건 그 데스그린인지 뭔지 도착하는게 늦어서잖아! 그때까지 시간끌면 되는건데 이거면 됐지 뭐."
"아.... 할 수 없군. 산체스에게 오래오래 끌라고 해봐야지."
창고에서 나온 남자는 할 수 없다는듯 장녀를 받아든다.
"테에? 니, 닌겐상? 어떻게 된 테치...? 시험은.... 테치?"
"아 아, 걱정하지마. 곧 끝나니깐."
"테츄..... 시험은 뭐인테치?"
"응? 응.... 곧 알게 될거야."
남자는 장녀의 몸을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준다.
그리고는 창고에서 나왔던 남자에게 장녀를 건낸다.
"꼬마야. 힘내라고. 시험에 통과하면 마마와 만날 수 있어!"
"테, 테에! 알겠는테치! 와타치 반드시 힘내보이는테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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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의 메인매치인..... J-1 슈퍼챔피언 타이틀전의 다음 상대인 데스그린양이.... 교통문제로 지금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메인매치의 지연이 생겨 당사는 대단히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그 대신! 특별 이벤트로 야생의 들실장과 슈퍼챔피언 산체스양의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후타바 제5공원을 주름잡고 있는 내츄럴 본 파이터! 야생 실장석인 '장녀'를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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